한국 현대시가 가장 사랑한 단어는 ‘나’
한겨레 2008-01-03 오후 08:45:26   
기사원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60928.html



1923~1950년 시 8201편 조사,  ‘나’ 1만여회 등장…‘사랑’ 51위,  화자 정서 읊는 서정시 특성


한국 현대시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단어는 ‘나’인 것으로 조사됐다.

김병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책임연구로 최근 출판된 <한국현대시어 빈도사전>(한국문화사 펴냄)을 보면, 1923~1950년 사이 나온 한국 현대시 창작시집에 수록된 시 가운데 ‘나’는 모두 1만1343회 등장했다. ‘나’는 2위인 동사 ‘가다’(5091)의 2배가 넘는 빈도를 보였다. 특히 나와 같은 의미인 ‘내’의 빈도수(1497)까지 감안하면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그 뒤로는 관사 ‘이’(4652), ‘하다’(4444), ‘없다’(4405), 의존명사 ‘것’(4167), 관사 ‘그’(4095), 대명사 ‘너’(3915)가 자리했다. 명사 가운데는 ‘밤’(3090), ‘속’(2618), ‘소리’(2615), ‘때’(2582), ‘마음’(2485) 등이 최다 빈도군에 속했다. 명사 ‘사랑’과 동사 ‘사랑하다’는 각각 1205회, 661회 사용돼 59위와 123위에 올랐다.

연구진은 1923~1950년 사이 344명의 시인이 창작한 모두 8201편의 작품에서 61만2065개의 어휘를 골라내 기본형을 기준으로 분석했다. 국립국어원에서 일반어 대상의 빈도 사전을 펴낸 적은 있으나 문학어 빈도 사전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교수는 ‘나’가 압도적으로 1위에 오른 데 대해 현대시가 대부분 화자의 정서를 읊는 서정시의 범주에 들기 때문일 것으로 분석했다. 김 교수는 “현대시에 ‘나’라는 단어가 많이 나타난 것은 시조와 가사 등 현대 이전의 시들과 크게 차이가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밝혔다. 고려 의종때 과정 정서가 지은 가요인 <정과정곡>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현대 이전 시에는 ‘나’라는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과정곡>에는 ‘접동새와 나의 신세가 비슷하다’는 의미의 표현이 나온다. 그는 또 사랑이란 단어의 빈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는 사랑이란 표현이 여러 형태의 다른 단어로 간접 치환되어 쓰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리움이나 님, 그대와 같은 다른 표현으로 사랑의 감정이 발산된다는 것이다.

최상위 빈도의 단어들 가운데 한자어가 거의 없는 것도 특기할만하다. 100위권 안에 든 한자어는 각각 55위와 63위를 차지한 산(山·1239)과 당신(當身·1184) 두 단어에 불과했다. 가다(2위) 오다(9위)나 없다(5위) 있다(10위), 하늘(20위) 땅(93위)처럼 대립되는 말이 비슷한 빈도로 나타나는 것도 흥미롭다.

대립어들 가운데 어둡고 우울한 정조의 단어들이 더 자주 등장하는 것도 눈에 띈다. 밤(12위)과 낮(447위), 슬픔(266위)과 기쁨(655위)이 이런 보기에 속한다. 예외도 있다. 웃음(164위)과 울음(241위)이 그런 사례다.

김 교수는 “시대의 문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최근 시를 분석하면 최다 빈도 낱말이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면서 “앞으로 50년대 이후의 시들을 10년 단위로 나눠 시어를 분석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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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1950년이라면 당연히 자연스레 일제강점기가 떠오른다.

일제시대 초반부터 한동안은 나의 땅에서 남으로 인해 '너'와 '나', '그들'과 '우리'로 극명하게 패가 갈리는 상황이었다. 
끊임없는 일제의 단속에서 살아남은 이런저런 간행물에 원고를 싣기 위해, 본질을 드러낼 수 있으면서도 지극히 간결하며 상징적인 그 어떤 것들을 찾아 고뇌한 흔적이 보이는 그 때의 글들. 
한글운동이 본격화되기도 했거니와, 아마 우리말을 사용하는 민족의 정서 하위에 깔린 본질적인 의식은 힘들고 어려울 때는 부모를 찾는 인간의 본능같은 바로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밤', '속','마음','소리'라는 말에서 숨 죽어있던 그 날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여 짠하다.
시어로 '나'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김영랑을 들지 않더라도 윤동주, 백석, 정지용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인들도 <'나'는 무엇>이며, <무얼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자문하며 괴로워 했을 것이다.

그 때의 내가 어떻게 했는가는 훗날 나의 후손들에 의해 자랑스럽게 회고되기도 하고, 두렵게 옭아매는 수갑이 되기도 한다.
좀 더 나를 사랑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by zizi | 2008/02/13 11:52 | & 책과 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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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파니 at 2008/02/13 21:54
마지막 줄, 간소하지만 감동적인 문장이네요. 나가 없으면 우리도 없는 것이겠지요.
Commented by zizi at 2008/02/13 22:10
점점 '나'만 있거나 '우리'만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가끔 저 자신도 그런 때가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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