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생각하면 쉬운 인생 -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알랭 드 보통 지음, 지주형 옮김 / 생각의나무
나의 점수 : ★★★★★

조금 까칠해도 괜찮아

 
이 책을 읽는 시종일관, 다른 사람의 생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도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것처럼 편하게 꺼내어 재미나게 풀어 쓸 수 있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는 이 책 이전에는 보통의 작품을 접한 적이 없었다.) 작가들의 능력은 ‘콜롬부스의 달걀’과 같아서 써놓은 것을 읽을 땐 아무것도 아닌 듯이 느껴지지만, 사실은 이런 걸 술술 쓴다는 일 자체도 대단한 일이지 않은가! (취향을 타서 좀 골라 읽기는 해도, 일반적으로 가볍게 치부되는 글인 수필류의 매력은 이래서 무시 못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책은 나와 인연이 없을 뻔했다. 이제는 식상하게까지 느껴지는 'oo하는 법'이라는 둥, 'oo하게 대처하기'..이런 건 재미있는 경우를 별로 못봤기 때문에 그런 류의 냄새가 나는 책은 여간해선 선택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그럼에도, 이 책을 집게 된 이유는 제목이 번역되면서 '살짝' 둔갑을 한데다가, 우선적으론 책표지가 너무 내 맘에 들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원제는 '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로 별로 재미없다. (솔직히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제목이다.) 역자는 갈등했을지 모르지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뭐,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뜬금없이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는 뭐냐고 반감을 가질 수 있겠다. 하지만 일단 내용을 봐도 단순히 프루스트로 인해 뭐가 변화되기를 촉구한다기 보다는, 작가의 '이렇게나 까칠하지만 사랑스러운' 프루스트에 대한 애정이 각 챕터에 어떻게 적절히 스며들었으며 독자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능동적으로 깨달아가느냐의 비중이 크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이 쪽이 조금 더 낫다는 생각. (이쪽이 익숙해져서 그런가;;;쩝 ) 그리고 일단 can change가 들어가는 책은 거부감이 든다는 것은 공통정서일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  -마구 넘겨짚기-


.....물론, 보다보니 내용이 그럭저럭 읽을만 했기 때문에 델구 왔지만...


 책의 구성은 9가지의 처세법에 대한 설명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괴짜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특이한 작품세계와 삶의 방식을 통해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너무 심하게 구체적이어서 좀 뻥을 섞는다면 이게 출판물인지, 개인 블로그의 잡설인지 헷길릴 정도랄까. 유럽작가치고는 굉장히 캐쥬얼하다는 이야기. (사실 무거운 얘기들 참 많은데, 가끔은 이에 지칠 때도 있었다.)


 아무튼 프루스트를 잘 아는 친구가 프루스트의 뒷담화를 하듯 쭈욱 이어지는 특유의 '글빨'은 어렵지 않고 재치있으며, 부드러운 커피처럼 걸리는 부분없이 끝까지 부드럽게 넘어간다. 프랑스인들 특유의 긍정적 기운, 유머러스함과 여유가 스며있어,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한번쯤 둘러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좋은 작가와 번역가, 출판사의 애정이 모인 복받은 책이로구나-하는 생각도 들고. 사실 프루스트가 복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떡값을 준 것도 아닌데 후배작가가 나 죽은 다음에 나에 대한 애정을 담뿍담은 책을 써주다니 복이 아니면 뭐겠냐고. 이 책 때문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싶어졌다는 사람도 부지기수더라. 완독에 성공할지는 미지수겠지만...-_-)


 개인적으로 재미있다고  생각되었던 것은 프루스트의 길고 구차하게(;) 늘리고 늘리고 늘려쓰고 고치고 또 고치는 것에 대한 우습게 편집적인 이야기들과 고통을 견디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들..  또, 고통을 견디는 방법, 내가 불행하니 남의 불행도 즐기겠다는 심리인지는 몰라도 심난할 때 보면 정말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얘기더라 ( ; ) 늘리고 늘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몇군데에 걸쳐 등장하는데 진정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쓰는 진짜 '작가'답다는 생각이 들어 나까지도 부분부분에 애착이 갔다.


스슥- 한번에 읽히는 책은 서점에서 그냥 서서보면 되니까 사기에 돈아까운 경우가 많다.

 척-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보니 별로 감이 안온다면 그리 읽고 끝내도 상관없겠지만, 지지부진하고 이갈리는 일상사에 치이다 못해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탈출하기 직전, 차 한잔과 함께 하면 좋은 약이 되기 때문에 책꽂이에 한 권쯤 구비해 두어도 돈아깝지는 않다는 이야기..   
(덧 - 가끔은 불어를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때가 있다. ^^ )

 

       "너무 빨리 하지 마세요 N' allez pas trop vite"는  

아마 프루스트주의적 슬로건일 것이다.

 그리고 너무 빨리 하지 않으면 생기는 이점은,

그러는 도중에 세상이 더 재미있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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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zi | 2008/02/13 13:44 | & 책과 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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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까마귀소년 at 2008/02/13 23:28
밸리에서 보고 왔습니다. 저도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좋아하는데요. 지금은 '불안'을 읽고 있거든요~
이 책도 읽어봐야겠네요! 그런데...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1권 읽다가 포기했었...;;
Commented by zizi at 2008/02/13 23:3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집(?)은 보기만 해도 배부른 책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저기서 살짝씩 언급되는 이유로 관심가지는 사람들이 많은 책이죠. 요즘엔 은근히 계실 법도 한데, 직접 아는 분들 중에서는 완독하신 분이 아직 안계셔요. 물론 저도 아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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